24년 5월 3일(금)
본문: 신명기 14:22-29
<본문>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해설>
오늘 본문은 십일조 규례를 기록합니다. 앞에서 모세는 정하고 부정한 음식, 곧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들에 관해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과 구별되어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들에게 자기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으로 삶을 살피고, 말씀을 따르는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음식을 다루다가 갑자기 십일조 규례를 말씀합니다. 성경은 언뜻 읽으면,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서 십일조를 말씀하는 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정한 음식을 먹는 것과 십일조를 먹으라는 말씀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2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십일조를 먹는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기억하고 신실하게 지킬 때,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신 14:22-23]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토지 소산의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먼저 가나안 땅을 분배받지 않은 레위인들에게 한 해 소산의 십일조를 드렸고, 레위인들은 받은 것의 십 분의 일을 제사장들에게 드렸습니다(민 18:21-24). 이처럼 한 해 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는 정기 십일조가 있습니다.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리고 남은 것 중에 10분의 1을 다시 떼어 성소로 가져갔습니다(23절, 신 12:5-7). 이 십일조는 일 년에 세 번씩, 곧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비용으로 그리고 잔치를 위해 쓰였습니다. 한 마디로, 절기 십일조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22절에서 ‘십일조를 드릴 것’, 이어지는 23절에서 ‘십일조를 먹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절기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소에 가져와서 함께 예배하고 먹어야 했습니다(신 12:18).
우리는 십일조라고 하면, 십분의 일을 딱 떼어 드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정기 십일조와 절기 십일조. 계산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10분의 1을 드린 것이 아니라 10분의 2를 매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십일조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너무 아까운 데…’ 이런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혀 아까워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기쁘고 즐거운 잔치 분위기입니다. 26하반절에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으며 즐거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을 고백하고, 하나님 경외를 배우기 때문입니다(23절). 이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소산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겸손하게 고백하는 행위가 바로 십일조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받아 누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에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경작할 힘을 주시고, 햇빛과 단비를 주시기에 수확을 거둡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었다면 수확은 전혀 거둘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소산을 거둘 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잊어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신 8:17-18]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십일조를 드리고, 또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소로 온 가족이 나아와 함께 먹으며 기뻐하도록 하십니다. 온 가족이 함께 십일조를 먹는 그곳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교육하는 현장이 됩니다. 이처럼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고백하고, 하나님 경외하게 하셨습니다.
[신 14:24-2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성소가 너무 멀고, 가기가 어려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돈으로 환산해서 필요한 것을 사도록 하셨습니다. 소, 양, 포도주, 독주 등 마음에 원하는 것을 사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식구가 먹으며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26절).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레위인과 이 십일조를 나누라고 하십니다.
[신 14: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레위인들은 성전의 일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레위인들에게 기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함께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의 생활을 보장함으로,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하고 있음을 표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훈련을 하게 하신 겁니다.
[신 14:28-29]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정기 십일조, 절기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3년마다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더 냈습니다. 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거룩한 곳간에 쌓아, 그 성읍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 나그네들, 고아, 과부 등을 위해 십일조를 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가나안 민족들은 힘을 가진 자들이 힘없는 자들의 재산을 강탈했습니다. 고아와 과부의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자기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 누구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즐거움에 동참하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십일조라고 하면, 십 분의 일을 딱 떼어 드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드렸던 모든 십일조, 정기 십일조와 절기 십일조 그리고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다 합쳐서 계산하면, 소산의 23.3%가 됩니다.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훈련을 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형제자매를 살피며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경외함. 옆으로는 형제자매를 살피고 사랑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가 구약 율법이었기에 폐지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새 언약의 시대이기에 오늘 본문에 기록된 규례대로 십일조를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율법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뜻을 바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십일조에 관해 이렇게 가르치셨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23장 23절입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박하, 회향, 근채는 향신료입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곡물만이 아니라 향신료까지 십일조를 드렸으니, 정말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 십일조 안에 담긴 참된 뜻은 전혀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
바리세인들이 드린 십일조에는 하나님 경외가 없었고, 형제 자매를 살피는 자세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일조에 담긴 의미를 알고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고백하고 경외함, 교우를 살피고 사랑함. 이 의미를 기억하고, 예물을 하나님께 즐거이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고후 9:7)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1.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고백하고 경외함, 교우를 살피고 사랑함으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2. (주보 기도제목) ‘대흥가족 한마음 큰잔치’가 잘 준비되어져서, 풍성한 교제를 나누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